김태훈의 칼럼은 표현보다 맥락이 더 문제다.



김태훈의 칼럼을 두고 일부는

김태훈이 한 말의 표현이 잘못 됐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일부는 표현상의 문제를 두고 김태훈을 ‘여성혐오자’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태훈의 칼럼은 진정 표현상의 문제만 있을 뿐

의도나 의도를 엮어간 맥락엔 문제가 없을까.


김태훈의 칼럼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다 보면

내면에서 용틀임 하고 있는 김태훈의 깊은 빡침이 느껴진다.

김태훈은 뭣 때문에 그렇게 빡쳐 있는가.

그의 내면에서 오래도록 잠재해 있다 튀어나온 저 분노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라치아 칼럼을 쓴 김태훈의 심리상태는 칼럼의 첫 포문을 연 

일갈’이란 단어에서 무엇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라는 김군의 말을 ‘일갈’이란 단어로 표현한 칼럼의 첫 문장. 


‘일갈’이란 ‘큰 소리로 꾸짖어 말하는 것’이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행위인 것이다. 


‘일갈’이란 단어의 사용에서 김군의 행위에 대한 애통함이나 애석함이 아닌 

일종의 묘한 쾌감과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김군을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낙오된 존재가 아닌 

남성들의 불만과 짜증을 야기한 대상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해방전사로 바라보는 느낌마저 풍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태훈을 이토록 빡치게 하고 김군을 IS에 가담하게 한 

‘사이비 페미니즘’의 실체는 무엇인가?


해외 뉴스에 연일 오르 내리는 IS보다 더 무시무시한 단체, 

한국 땅에 존재하면서 김군을 터키 테러단체로 몰아간 실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해외토픽감 아닌가.

언론에도 공표되지 않은 무서운 존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한국에 무뇌아적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무슨 비밀밀교집단도 아니고.

뇌가 없는 페미니스트 집단이라니.

끔찍한 일이다.



김태훈이 혹시 있을지 모를 무뇌아 페미니스트들의 테러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며

그라치아 지면에 폭로한 IS보다 더 무서운 ‘사이비 페미니즘’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패거리 이익에만 국한된 발언을 쏟아 내거나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것’




김태훈이 폭로한 그 무시무시한 단체의 패거리 이익을 위한 

패악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혼 시 재산의 공동분할 

2)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인정

3) 성적 수치심 일으키게 만드는 남성 사회적 매장시키기

4) 군가산점 페지


등.



김태훈의 주장에 의하면 

여성들의 이러한 자신들의 성에만 국한된 극악무도한 권리 찾기 운동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는 동물적 생존 본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일베와 남성연대란다.



이혼시 재산 공동분할 주장 

전업주부 가사노동을 인정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만드는 남성의 사회적 매장시키기

같은 테러 행위로 인해 한국의 많은 남성들이

생존의 위협을 당하고 있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다 못해

우리 여리고 착한 김군과 같은 이가 IS와 같은 테러단체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1번의 ‘이혼 시 재산의 공동분할’은 지면 상에 무려 두 번이나 등장한다. 

저 부분에 대한 김태훈의 개인적인 빡침과 그를 통한 생존의 위협을 느낀 강도가

엄청나게 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번의 예시로 가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이나 

쌤앤파커스 사건 등, 

여성들이 자신들이 당했던 피해에 대해 

과거처럼 더 이상 묵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발언하고 폭로하는 행위들이 

김태훈과 같은 남성에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갈 만큼 심각한 문제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 문장에서 쓰고 있는 단어들 때문이다.


‘매장시키기’ ‘일으키게 만드는’. 


김태훈이 사용한 단어를 보자면 성적 수치심을 느낀 여성은 

무언가를 당한 것이 아니라 행하고 있는 주체이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묘사된다. 

저 문장에서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을 당한 여성이 아닌 매장당한 남성이다. 

감히 나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만든 이 남성을 내가 벌하겠노라, 가 되는 것이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던 여성들을 순식간에 가해자로 만들고

가해를 피해로 둔갑 시킬 만큼 

이 문제에서 느끼고 있는 김태훈의 생존 위협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번은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그의 지적 태만과 무지를 보여주는 예시이므로 

무시하고 싶지만 살짝 언급하자면

폐지 소송을 행한 당사자가 여성이 아닌 그 제도로 인해 피해 받는 장애인 남성이었는데 

저것을 예시로 든 것을 보면 

김태훈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인터넷에 허위로 떠돌아 다니는 ‘여성부 죠리퐁 사건’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암튼 이와 같은 것들이 김태훈이 문장 하나하나마다 

자신의 오래된 분노와 적개심을 녹여 적어 내려간 

IS보다 무서운 ‘사이비 페미니즘’의 실체이다. 


김태훈에 따르면 IS보다 무서운 단체 사이비 페미니스트들이

이혼시 재산 절반 보장, 가사노동 권익찾기, 성추문 폭로하기 등을 통해

김군과 같은 이를 벼랑 끝으로 밀어 터키의 IS로 투신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태훈이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느끼고 있는 생존의 위협이라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이란 말인가?


저런 요구들이 이 사회를 병들게 해서 일베를 탄생시키고 누군가를 IS로 몰고 있단 말인가.


이런 식의 주장은 결국 

‘흑인들이 짜증나게 자꾸 백인들 밥그릇 빼앗기를 시전해서 KKK에 가담하고 싶어요’, 

라는 주장이나 

‘성소수자들이 자꾸 짜증나게 퀴어축제니 해서 그들에게 테러를 감행하고 싶어요’, 

라는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논리라는 것을, 

김태훈이 표현을 잘못해서 그렇지 맥락이나 의도가 잘못된 건 아니야, 

라고 이야기하는 일부 남성들은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김태훈이 그라치아 칼럼에서 

실체 없는 여성 일반에 대한 일방적 분노와 적개심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요구사항도 칼럼 마지막에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우리에게 사랑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마지막 문장.


2페이지에 걸쳐 실체 없는 여성 일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한 그가 

갑자기 사랑과 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랑과 대화는 무엇일까.

본인은 실체 없는 여성 일반에 대해 엄청난 적개심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면서

그 여성들에 대해 사랑과 대화의 자세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사랑과 대화의 자세를 누구에게 요구하고 있고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이고 대화는 무엇인가.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일베 관련 분석글과 말이 쏟아져 나왔을 때

한 진보 성향의 남성 지식인이 주장한 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일베를 타자화 해서 내치지 말고 페미니즘이 그들을 감싸안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저 말을 무슨 ‘신앙’이나 된 것처럼 읊는 사람들이 지천에 깔렸다.

타자화, 게토화 어쩌고 하면서.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적 양태가 일베를 타자화 하지 않으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일베의 여성혐오가 여성들이 일베를 타자화 해서 생겼다는 뉘앙스처럼.


일베와 같은 남성들이 득시글 거리는 조선시대에

그 남성들을 타자화 한 적 없는 여성에게도

여전히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존재했다는 것은 망각한 채.


정작 여성을 타자화 하고 있는 것은 ‘김치녀’나 ‘된장녀’라며 여성 일반을 이야기 하는

남성 전반임을 무시한 채.


일베가 아무리 여성 일반을 ‘김치녀’로 싸잡아 혐오를 표출하고 분노를 표출해도

김태훈이 칼럼을 통해 감히 남성을 상대로 밥그릇 싸움을 시전하는 

여성 전반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해도,

일베와 남성연대를 통해 태어난 김군 같은 존재가

‘나는 페미니즘이 싫어요!’라고 외칠 때에도

그것을 사랑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존재.

여성 혐오를 끊임없이 표출하는 일베 같은 남성들도 

타자화 하지 말고 사랑으로 감싸줘야 한다, 는 것이 

김태훈과 김태훈 발화 맥락을 옹호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너희들의 권리를 주장하되 감히 나의 밥그릇을 탐할 생각은 하지 말 것이며,

너희는 속되게 너희만을 위한 밥그릇 투쟁을 하지 말 것이며

오직 너희보다 소외된 소수자의 밥그릇 투쟁에 나설 때만이,

숭고한 남성 노동자의 노동운동에 함께 연대할 때만이,

그 권리 찾기 운동이란 것이 ‘사이비’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너희를 향해 김치녀니 무슨녀니 여성혐오를 공공연히 표출해도

너희는 사랑으로써 그들을 타자화 하지 말고 감싸줄 것이며 

내가 이렇게 2페이지에 걸쳐 너희들에 대한 일갈을 날려도

너희는 항상 나와 대화하는 자세를 가지고 사랑으로써

남성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사랑과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것이 김태훈의 ‘우리에게 사랑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문장에서

추출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맥락이다.


그라치아 칼럼을 통해 김태훈에게 존재하는 여성상의 종류는 

딱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이 어떤 짓을 해도 그것을 분노로써 대항하지 말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성녀와

사이비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악녀.


트위터상에서 처음 이 논쟁이 촉발되었을 때

‘온건적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 이분법적 논란의 양상이 나타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아닌 것이

김태훈의 글을 보고 표현은 좀 과격한데 저 글이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하는 남성 

다수에게 무의식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여성상 또한 

김태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


온건적 페미니즘은 착하고

급진적 페미니즘은 나빠요.


남성에게 조곤조곤 우리가 수용 가능한 선에서 여성스럽게 말하는 주장은 착하지만

기세고 드세게 바락바락 거리며 지 권리만 찾겠다고 손톱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주장은

보기도 싫고 그냥 집어치고 닥쳐 있음 좋겠어요, 가 저 문장에 숨은 발화 맥락인 것이다. 


뭣보다 이런 발화 맥락 자체가 이미 여성을 타자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베 같은 이들에 대해서는 

여성더러 타자화 하지 말고 관용을 보여달라고 주장하니 

그동안 참아왔던 여성들 입장에선 폭발할 수밖에.


차라리 일베처럼 대놓고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집단이라면 모를까

평소 소수자 인권 노동자 인권 이런 건 중요하다고 부르짖으며

그 어느 운동보다 숭고한 운동인 양 했던 이들이

일베가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김치녀’란 인식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써내려 간 

김태훈의 그라치아 칼럼에 대해

표현상의 문제만 있을 뿐, 맥락이나 의도는 그닥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옹호하고 두둔하고 있으니

뚜껑열린 여성들이 직접 CJ에 항의 전화 걸어 김태훈 밥그릇 뺏기에 나설 수밖에.



사회 전반에 퍼진 여성혐오에 대해 교정할 의사가 없이

일베에 대해 타자화 하지 말고 사랑과 관용의 자세만을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소위 그 

'일베를 타자화 하지 말라'는 진보적 성향의 남성들의 실체라는 것이

김태훈 칼럼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것.


그런 여성들의 보이콧 행위를 가지고 타자화, 게토화 하는 이들이야말로

평소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게토화 하는데 도가 튼 이들은 아닐까.


샤를리앱도가 테러 당한 것은 

평소 서구유럽사회가 이슬람을 무시한 결과라고 항변하던 이들이

김태훈이 보이콧 당하는 것은

여성들의 오버질, 파시즘적 행위, 어쩌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일단 그러한 자신들의 모순부터 따져 보는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덧글

  • Arcturus 2015/02/10 20:35 # 답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 hyet 2015/04/01 17:57 # 답글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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